[착한사례] 카메라 속에 꿈을 담다 - 원코리아미디컴 허철 대표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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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22 23:43
- 원코리아미디컴 허철대표 -
복잡한 편집 장비와 촬영 도구들로 가득 찬 허철 대표의 스튜디오, 원코리아미디컴을 방문했습니다. 피디이면서 회사 대표인 그는 오늘도 새벽까지 편집 작업을 하느라 잠을 거의 못 잤다고 했지만, 목소리는 평소처럼 자신감과 당당함이 넘칩니다.
그는 북한이탈주민임에도 전문 기술과 예술성이 모두 요구되는 방송 영상 분야에서 전문가로서 입지가 탄탄합니다. 북한에서부터 영상 관련 일을 한 적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한국에 와 뒤늦게 영상 관련 일을 배우기 시작하였지만, 지금의 위치에까지 오른 것입니다.
영상 편집 장비나 촬영장비들의 모든 기능이 전문 영어로 되어 있는 것이 어렵지 않으냐는 질문에 그는 ‘감으로 했다’며 크게 웃었습니다. 지금은 농담처럼 웃으며 말할 수 있지만, 처음부터 그렇지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복잡한 편집 장비들의 기능들을 완벽히 익히기 위해서 수백, 수천 번씩 클릭하며 원하는 영상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작업을 반복하였다고 합니다. 자유로운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젊었을 때부터 체계적으로 영상 교육을 받은 경쟁자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그들보다 몇 배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방법밖에는 없었습니다.
하고 싶은 일, 잘할 수 있는 것을 발견하라
“우리 탈북자들은 마음이 너무 조급합니다. 한방에 큰돈을 벌고 싶어 합니다. 또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아직 자본주의 사회를 잘 모르는 것입니다. 한방에 큰돈을 버는 길은 없습니다. 우리보다 뛰어난 능력이나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대한민국에는 많고도 많습니다. 그렇게 똑똑하고 능력 많은 사람도 날마다 회사에 출근해서 힘들게 일하면서 월급을 받아 돈을 모읍니다. 돈은 호락호락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허 대표는 1997년 고난의 행군 시기, 어렵게 가족들과 탈북한 후 국경선 주위의 깊은 산 속 과수원에 숨어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깊은 산 속마저도 공안당국의 눈을 피할 수 있는 안전지대는 아니었습니다. 이후 공안의 단속을 피해 북경과 청도의 소도시로 숨어서 온갖 힘든 일들을 하며 살다가 우연히 라디오를 통해 남한 방송을 듣게 되었고 남한에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어느 날, 가족들과 함께 몽골 국경을 넘었다. 온종일을 걸어도 나무 하나 없는 광대한 사막을 걸으면서 그는 ‘자유를 얻기도 전에 사막에서 목말라 죽겠구나!’ 라는 절망감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말을 타고 순찰을 하던 국경 경비병에 의해 극적으로 발견되어 월드컵으로 온 국민이 들썩이던 2002년도에 남한으로 오게 됐습니다.
하나원을 수료한 후 가장 먼저 자동차정비기술자 자격증을 6개월 만에 취득하였다. 자격증을 손에 쥔 그는 이것만 있으면 어느 정비소에서든 쉽게 취업해서 일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정비소 사장과의 첫 번째 면접 자리에서 큰 좌절을 경험하였습니다.
정비소 사장은 ‘나는 자격증을 원하지 않는다. 서울 연고대 같은 명문대 졸업장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지금 당장 나를 위해 돈을 벌어줄 수 있는 전문 기술자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는 자본주의 사회가 이토록 치열하게 자신의 경쟁력과 실력을 키워야 하는 곳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 후 자신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남들이 하기 힘든 전문 기술을 익혀야 하겠다고 결심하고는 평일 주간에는 전문 방송기술을 배우고 주말과 야간에는 막노동해가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습니다.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무척이나 힘든 시기였지만 결코 대한민국 사회가 원망스럽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도 대한민국은 나만 노력하면 성공의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사회인 데다 무엇보다 탈북 때와는 달리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미디어 영상촬영 편집 전문가가 되었을까? 여기에는 어린 시절 기록영화 촬영소에 근무하던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매일 어깨에 메고 다니던 멋진 촬영 장비를 보면서 언젠가 자신도 저런 장비를 만지고 싶다는 생각을 어려서부터 했다고 합니다. 오랫동안 힘든 탈북 생활을 하며 그 꿈을 잊고 살다가 한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면서 어릴 적 꿈이 다시 생각났습니다. 어차피 새로 시작하는 일은 어떤 것이든 힘들기 마련, 이왕이면 꿈꿔
왔던 길을 걸어가자.
그때부터 지금까지 무려 12년 넘게 이 분야에서 포기하지 않고 한우물만을 파며 묵묵히 외길을 걷고 있습니다. 초창기에는 일거리가 거의 없어 힘든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실력과 경쟁력을 모두 인정받아 꾸준히 그에게만 의뢰하는 클라이언트들도 많이 늘어났습니다. 무엇보다 취재에 거부감이 많은 북한이탈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영상을 촬영하거나 제작 시에 많은 주의가 요구되는 북한 관련 영상물에 관해서는 단연 그가 국내 최고 전문가입니다.
그는 지금도 작품 제작비를 받으면 대부분을 새로운 장비를 구매하는데 재투자합니다. 지금도 사무실 전체를 가득 메울 만큼 온통 촬영 장비와 카메라, 편집 시설을 갖추었지만 그는 항상 새로운 방송 장비에 욕심을 냅니다. 대한민국에서 경쟁력 있는 영상업체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새로운 장비와 최신 기술을 계속 익히고 도입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마침 인터뷰 도중 허 대표의 휴대전화에 반가운 문자가 왔습니다. 얼마 전 남북하나재단 홈페이지 공고를 보고 ‘경영개선지원대상자 지원금’을 신청했었는데 그 대상 업체에 최종 선정이 되었다는 문자였습니다. 허 대표는 신청서를 제출할 때도 이렇게 썼다고 합니다.
“최신 촬영 및 편집 장비 구매에 최소 500만 원이 필요합니다. 200만 원만 지원해준다면 우리 회사에서 300만 원을 추가로 투자해서 그 장비를 꼭 장만하겠습니다.”
그런 일에 대한 열정과 굳은 의지가 심사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노력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
고생에 비하면 큰돈을 버는 일도 아니고 잦은 지방 출장에 밤샘도 많은 일이지만 그는 지금도 이 일이 너무도 즐겁다고 합니다.
“사람마다 다 자기만의 능력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걸 발견하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남들이 하니까, 돈을 많이 주니까 하는 게 아니라 쫓아다니지 말고 자기에게 있는 재능을 발견했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영상이면 어떻고 농사짓는 거면 어떻습니까? 내가 잘 할 수 있고 잘하는 거면 무엇이든 하면 됩니다.”
허 대표는 자기의 사상이나 생각을 언제든지 피력할 수 있는 자유가 있고, 일한 만큼의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이곳 대한민국에 감사한다고 말했습니다. 인터뷰가 끝나가면서 그는 자신만의 재치와 여유를 찾은 듯 호방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면 됩니다. 노력은 절대로 나를 배신하지 않습니다.”
인생의 좌우명이나 존경하는 인물이 있느냐는 기자의 마지막 질문에 그는 거침없이 ‘에디슨’이라고 답했습니다. 마치 다음은 무슨 질문이 있을지를 미리 알고 충분히 준비한 사람 같았습니다.
“에디슨은 전구 발명에 성공하기 전 1,200번이 넘게 실험에 실패할 무렵 과연 개발에 성공할 수는 있겠느냐는 기자의 비아냥 섞인 질문에 아직도 실험은 실패한 것이 아니며 전구가 켜지지 않는 방법을 벌써 1,200가지나 알아낸 것이라고 답변했다고 합니다. 멋있지 않습니까? 생각을 전환하면 어려움에도 좌절할 이유가 없습니다.”
허 대표는 안 된다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될 때까지 노력하겠다는 긍정적인 의지와 도전정신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성공을 위해 달리기보다는 하고 싶은 일을 오래 즐기면서 하고 싶다고 말하는 그는 언젠가 자기 손으로 영화를 만들어 보는 것이 최대의 꿈이라고 말합니다.
그의 소중한 꿈을 응원합니다.








